
자립이 멀기만 한 이들에게 함께 온 기금
(사)함께만드는세상(사회연대은행)은 지난 20여 년 동안 한부모, 부채청년, 저소득 자영업자 등 금융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무담보·무보증 소액대출(마이크로크레딧)을 실천해 왔습니다. ‘신용이 아닌 가능성을 믿는 금융’이라는 철학 아래, 누구나 언제나 찾을 수 있는 ‘사회적 작은 은행’이 되고자 꾸준히 걸어온 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실천의 연장선에서 2024년, 사회연대은행은 지속 가능한 금융 선순환 모델인 ‘함께온기금’을 출범했습니다. 뜻을 함께하는 개인과 기업의 후원으로 조성된 함께온기금으로 제도권 금융에서 배제된 이들에게 삶을 바꾸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함께온기금 예비창업자금 대출사업은 대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닌 참여자와의 관계가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상담과 교육, 정서적 지지까지 함께하며 누군가의 불안한 오늘이 단단한 내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 걷고 있습니다.
“은행은 저 같은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아요”
현재 대부분의 국내 창업 대출은 신용점수와 담보 기반의 정형화된 심사평가 시스템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 결과, 실제로 창업 의지와 실행 역량을 갖춘 많은 예비 창업자들이 대출 문턱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경제활동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청년층(Thin filer), 프리랜서, 비정규직 등은 소득을 증빙하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되기 쉽고, 신용에 큰 문제가 없더라도 담보가 없다는 이유로 대출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실제로 사회연대은행을 찾은 많은 신청자들은, 제1금융권과 2금융권을 수차례 방문했지만 “대출을 알아보는 과정 자체가 오히려 ‘불가능의 벽’을 키워가는 시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예비창업자금 대출사업, 그 첫 번째 가능성 : 사연에서 시작해 자립으로 이어지는 금융
2024년 5월, 금융의 문턱을 넘지 못해 창업을 주저하던 누군가에게 ‘창업’이라는 길이 열렸습니다.
‘함께온기금’을 토대로 예비 창업자금대출사업을 시작하며, 금융소외 계층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새로운 자립 모델을 만들기 위해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함께온기금 예비창업자금 대출사업은 중위소득 100% 이하의 예비·초기 창업자를 대상으로 최대 3천만 원을 연 2~4% 이내의 금리로 지원하며, 신청자의 사연과 자립 의지에 주목했습니다. 프리랜서, 경력 단절,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소득 구조로 인해 제도권 금융기관의 문턱을 넘지 못하던 이들에게도 기회가 열린 것입니다.
심사과정에 있어서도 서류로만 판단하지 않고, 현장 방문, 대면 인터뷰, 사전 상담 등을 통해 신청자의 준비도와 실행 역량을 입체적으로 살폈습니다. 이는 ‘함께 준비하는 창업’을 위한 동반 자금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함입니다.
이를 통해, 제도권에서 신용 점수나 담보가 부족해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당신은 왜 안 되는가”가 아닌,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까”에 집중하며 대출 여부를 판단할 근거들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제도권 금융의 틈에서 시작된 시도
한 신청자가 말하시더군요.
“더 이상 발품 팔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사회연대은행 공고를 보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신청했어요. 사연이 탈락했다면 창업을 접었을 겁니다.”
함께온기금 예비창업자금 대출사업의 출발점은 명확했습니다. 창업을 꿈꾸지만, 금융권 어디서도 대출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습니다. 수많은 가능성을 현실로 바꿔내며 작지만, 강한 자립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간 다른 곳에서 대출을 시도해 본 수많은 신청자들은 “어디에서도 대출이 되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특히, 프리랜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경력단절 여성 등은 소득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창업 초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경로 자체가 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2024년 5월에 시작된 함께온기금 예비창업자금 대출사업의 신청자는 총 243명이었습니다. 본격적인 서류 제출이나 심사에 들어가기 전에 이들은 먼저 자가진단의 과정을 거칩니다. 자가진단을 진행한 243명 중 112명이 사연신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43명이 본심사에 진입하여 현재까지 총 8명이 대출자로 최종 선정되었습니다(25년 6월 기준).
단순히 자격을 갖춘 것이 아니라 창업에 대한 준비된 태도와 역량, 실행력을 보여주신 분들입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신청을 해주셨지만 모두 창업자금을 대출해 드리지 못해 실무자로서 언제나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담당자로서 심사 의견을 보면 ‘창업과 연관된 경력이나 자격 등’이 전혀 없거나, ‘창업 한번 해보려고요’라고 과감하게 도전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최종적으로 창업자금 대출로 이어진 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삶의 고단함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창업 준비해 온 이력과 성실성에서 있어서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근거가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상담부터 대출까지 늘 사람이 중심
이 사업의 가장 큰 특징은 심사 과정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청자의 태도, 업종 연관성, 창업 계획서의 실현 가능성을 다면적으로 살펴보며 고민과 현실을 함께 검토했습니다. 사연 기반 심사는 진입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신청자의 진정성을 파악할 수 있는 통로가 됩니다.
함께온기금 예비창업자금 대출사업의 심사 과정은 단지 ‘가능성 판단’을 넘어, 신청자의 삶을 함께 고민하는 ‘관계 기반 금융 모델’입니다. 신청자들은 “창업 계획을 진지하게 함께 검토해 줬다”, “공사 중 매장을 직접 찾아와 응원해 줬다”라며 관계 중심의 신뢰를 경험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창업 준비가 부족하거나 사업 아이템의 지속 가능성이 높지 않아 대출에 선정되지 못한 신청자들도 “내가 창업을 진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음을 다시 깨달았다”라는 피드백을 남길 만큼, 함께온기금 예비창업자금 대출사업은 선정 과정에서 창업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년 간의 여정, 숫자와 사례가 말하는 변화
1년여 기간 동안 함께온기금 예비창업자금 대출사업을 진행해 오며 창업이라는 무거운 단어 앞에 주저앉았던 사람들의 사연에서 시작해, 현실에서 마침내 문을 연 가게, 일터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성과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조건적인 대출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자립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선발하기 위해서는 신용점수를 대신할 수 있는 세심하고 정교한 상담과 창업 동향에 대한 파악, 성공 가능성에 대한 평가와 예측이 뒷받침돼야 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출 금액은 최소 400만 원에서 최대 3천만 원까지 개인별로 차등 적용되었으며, 상환 조건은 2~4년으로 대출자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했습니다. 수혜자 중에는 신용점수 530점 이하의 저신용자도 있었고, 사업 실패, 프리랜서 경력, 다자녀 양육, 은퇴 후 재창업 등 다양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 눈여겨볼 변화는 대출자가 후원자로 전환되는 흐름입니다.
창업 이후 일정한 매출과 운영의 안정성을 확보한 일부 참여자들이, 이제는 받은 도움을 다른 누군가에게 돌려주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8명의 대출자 중 3명은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이후, 사회연대은행의 ‘함께나눔가게’ 후원자로 자발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 숫자는 단순한 수치를 넘어, 사연 중심의 심사 방식과 창업 이후의 꾸준한 사후관리가 만들어낸 신뢰 기반 금융의 선순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금융이 숫자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이어지고, 다시 사람에서 또 다른 가능성으로 확장되는 이 구조는, 사회연대은행이 지난 20년간 지켜온 방향이자 앞으로 나아갈 이유이기도 합니다.
신뢰기반 금융의 힘, 확장 가능한 자립 지원 모델로 나아가기
함께온기금 예비창업자금 대출사업은 일회성 지원이 아닙니다.
대출 이후에도 사회연대은행은 정기적 모니터링, 맞춤형 컨설팅, 필요시 추가 금융 연계 등을 통해 창업 이후의 지속가능성까지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점은 이 사업이 외부 재정에 의존하지 않는 자체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상환금이 다시 다음 창업자의 자금으로 순환된다는 점입니다.
이는 향후 다른 영역, 다양한 사업모델로의 확장가능성을 여는 것입니다. 사회연대은행은 이 사업의 경험을 기반으로 개인 소액대출사업을 출시하였으며, 사회혁신조직 대상 금융 등으로 함께온기금의 사업 범위를 확장할 계획입니다.
함께온기금 예비창업자금 대출사업의 1년은 누군가의 가능성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간이었습니다. 금융이 숫자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그 가능성을 함께 만든 시간에 대한 기록은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의 첫 시도와 두 번째 기회로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또 어떻게 준비해 왔는지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삶의 다음을 함께 준비하고 싶습니다.”
글: 원준혁 편집위원(前함께온기금 예비창업자금 대출사업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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