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대출 사업 기획기사 ②]

“채무조정 중이라 어디서도 대출이 안 된다고요? 여기서는 가능합니다.”
언뜻 모순처럼 들립니다. 이미 빚을 갚고 있는 청년에게 추가로 돈을 빌려준다니요. 2023년, 개인회생 신청은 전년 대비 34.5% 급증했습니다. 20대와 30대 청년들이 학비, 생활비, 의료비로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법원이나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채무조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다시’ 대출하는 사업을 기획했습니다. 대체 왜일까요? 그리고 이게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까요?
빚의 악순환, 어디서 끊을 수 있을까
채무조정을 받은 청년들은 매달 빚을 갚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생활비가 부족해도, 갑자기 병원에 가야 해도, 면접 볼 정장이 필요해 급전이 필요할 때 돈을 빌릴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부채로 신용 점수가 낮아 제도권 금융기관의 문턱을 넘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고금리 사금융으로 향하거나, 카드를 돌려막는 방식으로, 또다시 빚을 냅니다. 빚을 갚기 위해 빚을 지는 악순환. 신용회복위원회 개인워크아웃의 실패율이 2023년 25.1%에서 2024년 27.2%로 오른 이유입니다. 제도는 있지만, 버틸 수 있는 환경은 없었습니다.
청년 부채와 관련한 사업을 진행하며, 청년들이 빚을 지는 다양한 환경과 맥락을 보게됩니다. 그 원인을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드 돌려막기, 더 높은 고금리 부채를 지게되는 등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위한 환경 조성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재무 상태를 알고 신용회복 제도를 이해하는 데에서 시작하여, 소비와 관련한 일정한 습관을 형성하여 자기 규율의 감각을 갖는 것은 비록 단번에 부채를 축소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더 곤란한 상황으로 빠져드는 것은 막을 수 있다고 봤습니다.
사회연대은행은 여기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빚을 갚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다시 살아갈 힘을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신용 점수가 놓치는 것들
은행과 금융기관은 신용 점수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신용 점수 평가는 효율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이지만, 이 시스템은 몇 가지를 놓칩니다.
첫째, 과거는 보지만 현재의 변화는 보지 못합니다. 채무조정을 받았다는 기록은 남지만, 지금 성실히 상환하고 있다는 사실은 점수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둘째, 숫자는 맥락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왜 빚이 생겼는지, 가족을 부양해야 했는지, 갑작스러운 실직 때문이었는지, 그 사정은 점수에 담기지 않습니다.
셋째, 현재 상태는 판독하지만, 미래 가능성은 보지 못합니다. 지금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그러리라고 단정할 수 없는데도 말입니다.
함께만드는세상은 이 틈새에 주목했습니다. 점수 밖에 있는 청년들, 하지만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와 계획을 품는 사람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평가가 아니라, 함께 걸어갈 시간과 관계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담보도, 보증인도, 높은 신용등급도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출을 원하는 사람에게 다른 질문을 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이 돈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6개월 동안 함께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의지가 있으신가요?”
신용 점수 대신 의지를 봅니다. 태도를 봅니다. 미래 계획을 봅니다. 실행하려는 진심을 봅니다.
이러한 접근을 금융 업계에서는 ‘관계금융’이라고 부릅니다. 신용점수 같은 계량적 지표 대신 장기적 신뢰 관계와 비계량 정보를 바탕으로 금융을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단순히 돈을 빌려주고 받은 거래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동행하는 것입니다.
한가지 예로, 2023년부터 진행한 ‘두나무 넥스트 드림’ 사업은 이러한 관계금융의 방식이 청년 부채 문제 해결에 있어서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두나무 넥스트 드림은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 또는 법원의 개인회생을 신청해 채무를 상환 중인 청년을 대상으로 대출을 지원해 왔습니다. 채무조정 중인 청년 300명에게 무이자로 최대 250만 원의 생계비 대출을 실행하고 추가로 재무컨설팅을 지원했습니다. 또 다른 트랙으로는 채무조정 중인 청년 300명에게 6회의 재무컨설팅과 120만 원의 생활비를 무상으로 지원했습니다.
돈만 빌려주지 않습니다, 함께 걷습니다
이 사업에서 중요하게 다룬 것은 ‘대출 실행과 상환’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도 대출을 매개로 형성된 관계를 통해 청년들의 좌절과 우울을 희망으로 바꾸고 비전 있는 미래를 그리도록 이끄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대출 참여자는 6개월 동안 전문 재무컨설턴트와 1:1로 만납니다. 월급은 얼마나 들어오는지, 어디에 돈을 쓰는지, 저축은 가능한지, 카드 돌려막기를 줄이는 방법은 없는지 함께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웁니다.
“이번 달엔 5만 원 정도 저축해볼까요?”
“공공금융 상품 하나 알아볼까요?”
“통신비 요금제, 한번 바꿔보면 어떨까요?”
“친구와의 만남이나 문화생활을 줄여서 고립감을 느끼기보다는 주 1회 정도 확보해 보면 어떨까요?”
작지만 실행 가능한 것들부터 시작합니다. 현재 나에게 꼭 필요한 목록을 함께 짚어봅니다. 컨설턴트는 가르치는 사람이라기보다, 함께 고민하고 계획하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응원하고, 때로는 실패해도 다시 방법을 찾으며 청년들을 격려합니다.
그 과정에서 청년들은 배웁니다. 돈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신용을 관리하고 제도권 금융 시스템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는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행복을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 등등.
1년 후, 몇 가지 변화들
사업 종료 후 성과 분석을 진행한 결과, 세가지 영역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금융 행동의 변화입니다.
| • 카드 돌려막기 2.8% 감소, 소득 상환 1.7% 증가 • 사금융 대출 이용률 4.1% 감소, 공공금융 대출 이용률 5.3% 상승 • 금융지식이 49.2%에서 81.8%로 향상 • 미래 경제 전망이 42.4%에서 85.6%로 긍정적으로 변화 |
특히 계획적인 소비와 저축은 컨설팅의 주요 학습 영역으로서, 컨설팅 이후 소비와 저축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9.4% 증가했고, 계획적인 소비와 저축 실천은 30.2% 큰 폭으로 향상되었습니다.
이는 재무컨설팅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실제 행동 변화로 이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청년들이 고금리 사금융에서 벗어나 공공금융으로 이동한 것, 무분별한 카드 사용에서 계획적 소비로 전환한 것은 제도권 금융으로의 복귀를 위한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둘째, 경제적 안정의 회복입니다.
| • 실업률 3.3% 감소 • 정규직 비율 2.9% 증가 • 공공 임대주택 전입 7.4% 상승 • 주거 유지에 필요한 경제적 여유를 느끼는 정도 23.2% 향상 |
재무컨설팅 및 생활비 무상 지원을 받은 청년들의 경우, 사업 참여 전과 비교하여 부채 수준과 대출 금리가 낮아졌습니다. 이는 긴급 생활비 지원이 금융위기 청년의 부채 상황과 경제적 여건 개선에 마중물로서 역할했음을 의미합니다. 당장의 생계 위기에서 벗어나자, 청년들은 비로소 장기적 관점에서 일자리를 찾고 안정적인 주거를 확보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 것입니다.
셋째, 심리적 회복입니다.
| • 자아존중감 4.5% 향상 • 행복감 10.5% 상승 |
숫자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빚으로 인한 우울과 자책에 시달리던 청년들이 스스로를 긍정하고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된 변화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번 사업을 통해 확인한 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를 회복하려면 금전적인 지원뿐 아니라 정서적·신체적 건강이 함께 개선되어야 하며, 특히 사회적 고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은행이 배제한 사람들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사회연대은행이 만들고자 하는 것은 청년들이 빚을 갚는 것을 넘어 건강한 금융 습관을 형성하고,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기르는 환경입니다. 대출-상환의 일회적 거래가 아니라, 교육, 컨설팅, 멘토링을 통해 신뢰 관계를 쌓고, 그 안에서 청년이 다시 사회로 돌아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회적 금융이 지향하는 방향입니다.
은행은 위험을 회피합니다. 리스크를 줄이는 것은 은행의 역할이고 책임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금융은 조금 다른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은행이 위험 회피 과정에서 배제한 사람들, 숫자로 평가할 수 없는 그들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신용 점수가 낮아도, 잠시 실업 상태에 놓인, 지금 당장 갚을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이 사람이 다시 일어설 방법은 없을까?’ 두나무 넥스트 드림의 결과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었습니다.
금융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입니다
빚 갚는 청년에게 다시 돈을 빌려주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빚을 갚게 하려는 게 아니라, 다시 살아갈 힘을 함께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사회연대은행은 앞으로도 이 고민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숫자가 아니라 사람을 보고, 거래가 아니라 관계를 만들고, 대출과 더불어 자립을 지원하는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아가겠습니다.
글 : 이경민 편집위원(두나무 넥스트 드림 사업 담당)
*이 글은 두나무 넥스트 드림 사업의 성과 분석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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