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1일과 22일, 서울 코엑스에서 제3회 대한민국 사회적가치 페스타(SOVAC 2026)가 열렸습니다. 사회연대은행 부스에 놓인 키오스크 앞에는 이틀 내내 화면을 들여다보는 관람객이 이어졌습니다. 화면이 건네는 질문은 모두 여덟 개입니다. 모두 ‘누군가의 금융을 곁에서 돕는 자리에 선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를 묻습니다. 마지막 답을 고르면 여섯 가지 ‘금융 서포터즈’ 유형 가운데 하나의 캐릭터가 인쇄돼 나옵니다.

이번 ‘금융 동행 유형 테스트’를 기획하며 사회연대은행은 함께온기금이 지향하는 여섯 가지 가치를 하나씩 담은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결과지를 받아 든 관람객들은 어떤 캐릭터가 나왔는지 서로 견주어 보며 흥미로워했습니다. 사회적금융이라는 낯선 말 대신에, 귀여운 캐릭터와 함께 ‘나는 어떤 방식으로 금융을 지원하는 사람일까’라는 화두가 관람객에게 닿았습니다.
부스에서 관람객이 ‘돕는 사람’의 자리에 서 보았다면, 둘째 날 오후 4시 A홀 독립무대 1에서는 금융 사각지대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사회연대은행이 KAIST와 함께 마련한 스페셜 프로그램 ’관계형 금융은 어떻게 포용을 만드는가’입니다. 안준상 사회연대은행 상임이사가 세션을 열었고, 김세권 미래사업부 부장과 김가온 KAIST 경영공학부 박사과정이 차례로 발표했습니다.
같은 빚, 다른 상황
“부분을 알면, 전체를 알까요?”
안준상 상임이사는 질문으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신용점수, 소득, 부채는 모두 한 사람을 보여주는 정보이지만, 그 사람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개인의 정보값은 귀한데, 그건 저마다 다른 이야기로 그려낸 코끼리 다리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겉보기에 같은 연체 기록이라도 그 뒤의 사정은 다릅니다. 빚을 만든 원인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사람이 있고, 원인을 해결한 뒤 계획을 세워 갚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안 이사는 이 차이가 앞으로 갚을 수 있는 가능성과 지금 필요한 도움의 종류를 결정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포용금융 정책으로, 정책서민금융의 공급 규모는 커지고 금리 지원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다만 문턱 앞에서 던지는 질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표준화된 심사로 많은 신청을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구조에서는 ’과거 금융 이력이 어떤가, 신용점수는 몇 점인가’를 먼저 물을 수밖에 없고, 신청자가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지 설명할 기회는 좁아집니다. ‘관계형 금융’은 그 자리에 다른 질문을 놓습니다. “당신에게 왜 이 돈이 필요한가요?”
안 이사는 지금의 포용금융이 문턱을 낮춘 포용이라면, 사회연대은행이 해온 것은 관계에서 비롯된 포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관계에서 얻는 것은 온정이 아니라, 점수가 만들지 못하는 정보입니다.
안 이사는 ‘관계형 금융’을 실천하는 원칙을 세 단어로 정리했습니다. 신청자의 사연과 그 이면의 맥락을 묻고, 들은 이야기를 객관적인 금융정보와 대조해 확인하고, 무엇을 확인했고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를 다음을 위해 남기는 것입니다. 사회연대은행은 23년 동안 이 방식으로 금융취약계층 7,286명에게 728억 원을 100% 무담보로 지원했습니다.
“받을 수 있는 대출이 없어요”
김세권 부장의 발표는 휴대폰 화면 이미지로 시작했습니다. 한 신청자가 심사 과정에서 직접 제출한 화면으로, 조회한 대출 상품 19개 가운데 승인 가능한 상품은 0건이었습니다. ’프로젝트 다시, 봄’은 이렇게 금융 이용이 막힌 청년들을 다시 보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프로젝트 다시, 봄’은 기존 금융에서 대출이 거절된 청년에게 연 1%의 저금리 자금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사회연대은행이 카카오뱅크·신용회복위원회와 함께 진행한 사업입니다.

올해 4월부터 7월까지 신청한 청년은 1,432명입니다. 김 부장은 신청자 전체의 중앙값으로 ’대표 신청자’의 모습을 그려 보였습니다. 31세, 월 소득 250만 원(신청자의 93.7%가 소득 보유), 5건으로 나뉜 채무 2,662만 원, KCB 신용점수 595점입니다. 매달 61만 원, 소득의 28%가 상환으로 나갑니다. 신청자의 66%는 대부업의 문을 두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신청자들은 이미 일하고 갚고 있는데도 빚이 줄지 않는 청년들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빚은 어디서 시작됐을까요. 1,432건의 사연을 부채 발생의 1차 원인별로 분류하자 가족 부양·채무 이전(22.6%), 생계비 누적(21.8%), 고용 단절·임금체불(14.9%), 본인 의료·건강(9.5%), 취업준비 등 이행기(8.4%)가 차례로 나타났습니다. 과소비·투자·도박 등은 8.2%였습니다. 대부분의 시작은 생활의 위기였습니다.
위기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출이 1 개인 신청자의 69%가 6개월 안에 다시 돈을 빌렸고, 대출이 7개 이상인 경우 그 비율은 91%에 달했습니다. 차입 순서가 뒤로 갈수록 은행 대출의 비중은 73.5%에서 64.6%로 줄고 제2금융권 대출 비중은 18.9%에서 29.0%로 늘었으며, 다음 대출까지의 간격은 5.2개월에서 2.3개월로 짧아졌습니다. 김 부장은 “이 사람은 부채 구조가 이미 구조화돼서, 아무 이벤트가 없어도 시간이 흘러가기만 하면 무조건 새로운 대출을 일으켜야 합니다”라며, 금리가 높은 한 건을 전액 갚아 확실히 끄는 일이 필요하다고 짚었습니다.
그래서 ‘프로젝트 다시, 봄’은 사연 신청서와 면접, 심사 메모라는 세 조각을 맞물려 한 사람을 봅니다. 면접에서는 글로 적힌 사연, 신용정보와 부채 현황, 그리고 실제 행동이 서로 맞는지를 확인합니다. 김 부장이 소개한 한 신청자는 카드론 4건 가운데 2건을 이미 완제했고, 가계부를 쓰며 청약저축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남은 카드론은 보유 자금과 연 1% 대환 자금을 함께 써서 정리할 계획이었습니다. 이미 해온 일과 앞으로 이어가려는 계획을 함께 본 결과였습니다.
문턱을 낮추는 만큼 안전선도 지킵니다. 연 1%의 대출도 새로운 상환 의무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채무조정을 이행 중인 사람의 비중은 신청자 가운데 22.8%였지만, 승인자 가운데서는 30.2%로 오히려 높았습니다. 조정 이력이 배제 사유가 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소득과 부채, 상환 부담을 따져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대출이 적절하지 않다면 채무조정 등 다른 지원 경로를 함께 찾습니다. 김 부장은 “면접은 거절의 관문이 아니라, 이 자금이 짐이 되지 않게 하는 마지막 확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발표의 마지막 주제는 기록이었습니다. 면접 대화는 음성인식(STT)으로 전문을 남기고, 어떤 지원이 적절하며 무엇을 근거로 판단했는지를 메모로 남깁니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신용평가 전문가와 함께 기준을 미리 설계하고, 주민등록번호를 대신할 식별체계와 데이터 보호 규칙도 마련했습니다. 스크린에는 이런 문장이 떠 있었습니다. “선한 의도가, 데이터 보호의 책임을 면제해주지는 않습니다.”
375건의 통화가 들려준 것
이어진 김가온 박사과정의 발표는 그 세 조각 가운데 비어 있던 가운데 조각, 면접의 대화를 데이터로 들여다본 작업이었습니다. KAIST 연구팀은 심사 전화 면접 녹취 375건을 음성인식으로 전문 기록하고, 대화를 16개 항목으로 나눠 코딩한 뒤 통계로 확인했습니다. 승인 여부를 예측하는 모형을 만드는 대신, 대화가 어떻게 달랐는지를 살폈습니다. 김 박사과정은 “민감한 개인정보나 정신건강, 지시적 피드백 등은 평가에 쓰지 않기로 처음부터 정해뒀습니다”라며, 무엇을 셀지 정하는 일은 무엇을 세지 않을지 정하는 일이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첫 번째 결과는 절박함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승인된 통화의 92.2%, 미승인 통화의 82.2%에서 신청자가 절박함을 이야기했습니다. 어려움을 말하는 강도만으로는 두 집단이 뚜렷하게 갈리지 않았습니다.
차이는 다른 곳에서 나타났습니다. 전체 통화의 43.0%에서 신청서에 적지 못한 사정이 면접에서 확인됐습니다. 특히 ‘이 빚이 왜 생겼는지’가 대화에서 처음 드러난 경우는 승인 통화에서 14.8%, 미승인 통화에서 5.8%로 약 2.5배 차이가 났습니다. 면접은 신청서의 빈칸을 채우기도 하고, 사실관계를 바로잡기도 했습니다. 신청서에 ’과거에는 부모님이 도와주셨지만 지금은 어렵다’고 쓴 한 신청자는 면접에서 오히려 ‘매달 부모님께 50만 원씩 드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청서만 보면 지원이 끊긴 사람이었지만, 실제로는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장 뚜렷한 차이는 연결에서 나타났습니다. 위기의 원인, 필요한 자금, 앞으로의 계획이 대화 속에서 모두 이어진 비율은 승인 통화 12.6%, 미승인 통화 4.4%로 약 3배였습니다. 김 박사과정은 “모두가 절박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차이는 절박함의 크기가 아니라, 사실과 계획이 함께 나오는가에서 나타났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채무조정 이력이 있는 신청자들의 대화도 소개됐습니다. 서류에는 ’채무조정 중’이라는 한 줄만 남지만, 대화에서는 신용카드를 없애고 무이자 가족 채무부터 갚고 있다는 이야기, 가계부를 쓰며 외식을 줄이고 도시락을 싸 다닌다는 이야기, 중도상환수수료를 미리 확인해 두고 여유가 생기면 바로 갚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스크린에는 “성실하게 갚아온 이력은 서류의 낙인 뒤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대화는 그 이력을 신용으로 되돌려 놓았습니다”라는 문장이 이어졌습니다.
김 박사과정은 분석 결과를 어디까지 써야 하는지도 분명히 했습니다. 설명하는 방식은 교육 수준, 언어 능력, 그날의 심리 상태에 따라 달라지고, 대화의 흐름은 심사자가 무엇을 더 묻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이 결과는 ’설명을 잘하는 사람’을 가려내는 기준으로 쓰지 않습니다. 심사자마다 다른 질문을 찾아 공통 질문 목록을 만들고, 녹취와 신청서를 맞춰 놓친 정보가 없었는지 확인하고, 면접 패턴이 특정 집단에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는지 점검하는 데 씁니다. 그는 “AI는 심사자를 대신해 판단하지 않고, 면접 대화를 구조화해 심사 과정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분석 도구로 쓰였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틀간의 동행을 마치며
이틀 동안 사회연대은행은 부스에서는 여덟 개의 질문으로, 무대에서는 ‘관계형 금융’의 원리와 데이터로 관람객을 만났습니다. 사회적금융이 한 사람 곁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더 많은 분과 나눈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관계형 금융’은 한 번의 심사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연을 묻고, 금융정보와 맞춰 확인하고, 판단의 근거를 남기는 일이 쌓여야 다음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회연대은행은 그 기록이 심사를 점검하고 개선하는 데 쓰이도록 방법을 다듬어 가며, 이날 무대의 마지막 문장을 현장에서 이어갑니다.
“한 사람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지원을 함께 찾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