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위로의 싱어송라이터에서 고막 남친으로” 

나눔대사 구현모, 이제 막 음악 활동을 시작하는 청년, 바이올리니스트 정원준과 만나다

구현모 나눔대사와 정원준
▲ 구현모 나눔대사(왼쪽) & 정원준 님(오른쪽)

8월의 어느 오후, 잠원 한강공원의 한 카페. 바이올리니스트 정원준 님이 혼자 스피커를 옮기고 앰프를 연결하고 마이크 스탠드를 세웁니다. 땀이 흐릅니다. 평일 낮에는 악기사로 일하는 그는 주 1회 이곳에서 무료 공연을 엽니다. 카페가 공간을 내어주고 나머지는 전부 그의 몫입니다. 손님이 거의 없는 시간대일 때도 많지만, 그래도 연주를 이어가고 싶어서 매주 장비를 지고 옵니다. 다섯 곡 남짓을 연주하고 다시 혼자 장비를 정리합니다.

그 모습을 한 사람이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사회연대은행 나눔대사 구현모 님입니다. 그 역시 곡을 쓰고 녹음하고 무대를 연출하고 영상까지 만드는 멀티플레이어 뮤지션입니다. 장비 정리가 끝나갈 무렵 스피커 위치와 무대 각도에 대한 조언이 오갔고, 두 사람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시작됐습니다.

지난 6월 27일 구현모 나눔대사는 첫 재즈 디지털 싱글 ‘It’s raining’ 발매를 기념해 서울 강남구에서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그 공연에 자립준비청년을 무료로 초대했고, 오프닝 무대에는 자립준비청년이자 바이올리니스트 정원준 님이 섰습니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만남이 이어져 왔는지, 그리고 공연을 마친 지금의 소회를 듣고 싶어 자리를 청했습니다.

형이랑 저는 인연이 묘하네요

사회연대은행두 분이 어떻게 처음 알게 되신 건가요?

구현모자립준비청년 박람회에서 처음 만났어요.

정원준2023년도에요.

구현모사연이 좀 재밌어요. 연예인 지인이 자립준비청년 박람회를 준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서, 제가 그렇게 의미 있는 일이면 개런티 상관없으니까 가겠다고 했어요. 그때 원준이를 처음 만났고요.

정원준형이랑 저랑 인연이 묘하네요.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 맡은 일이 1회 자립준비청년 박람회 매니저였어요. 그때 형이 그 무대에 섰던 거예요. 그 이후로 두나무 넥스트 잡 인턴십으로 일했는데, 현모형이 제가 일하는 단체에 정기적으로 봉사를 와서 계속 만나게 됐어요.

구현모그러고보니 그 무대 때문에 사회연대은행과도 이어졌네요. 보통 초청 가수들은 무대에서 자기 노래를 하는데, 저는 덜 유명한 가수인데도 제 곡을 안 하고 만나는 친구들이 들으면 좋겠는 노래를 갖고 갔거든요.

사회연대은행저희 기관이 그때 구현모 대사님 무대 보고 나눔대사를 제안했다고 들었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구현모저도 디테일한 이야기는 처음 하는데, 그런 부분을 알아주셔서 감사했어요.

사회연대은행   그때 처음 만난 후로 두 분이 계속 연락하고 지내셨나요?

구현모   딱히 연락하고 지내지 않아도, 봉사 활동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매달 보고 있죠.

정원준   만나면 인사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형은 성격이 좋은데 제가 성격이 좋지 않아요. 제가 먼저 “오셨습니까?” 이런 걸 못 해요. 그런데 현모 형이 먼저 다가와 주셨어요.

구현모_나눔대사_공연
▲ 구현모 나눔대사 재즈 콘서트 현장

사회연대은행   이번 구현모 대사님 공연은 자립준비청년을 무료로 초청하고, 원준님이 오프닝을 열어주기도 했는데,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요?

구현모   처음엔 그냥 보육원 봉사하러 간다는 생각이었는데, 자립준비청년 박람회를 통해서 ‘아 이 친구들이 나와서 진짜 고생했겠구나’ 싶으면서 그 뒤로 계속 머릿속에 남았어요. 저와 가장 큰 차이라면 부모님이 있고 없고의 차이인데, 저는 부모님이 계시지만 혼자 호주가서 사회생활을 너무 빡세게 했기 때문에, 이 친구들이 계속 마음에 남더라구요. 사실 저희 같은 아티스트들도 뭔가 영감을 채워야 해서 공연도 보러 다니고 해야 하는데 너무 비싸잖아요. 아티스트로서 공연을 못 보는 게 늘 서러웠어요. 이 친구들도 먹고살기 바쁠 텐데 공연 보러 올 돈이 있을까 싶더라구요. 그래서 자립준비청년 지원 단체들에 연락해서 무료로 와서 볼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원준이를 초대한 건 이 친구가 자립준비청년으로서 너무 잘 성장한 친구이기도 하고, 제가 연주도 들어봤잖아요. 봉사 활동하면서 들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연주가 별로였으면 안 세웠을 거예요.(웃음) 근데 원준이가 연주를 잘하니까 부탁했죠.

사회연대은행   원준 님은 처음 협연 제안 받았을 때 어떠셨어요?

정원준   좋았죠. 왜냐하면 누군가 저한테 콜라보를 하자고 한 사람이 없어요. 저는 네트워크도 없고, 제안이 들어오면 감사하고 평소엔 그냥 일만 하고 지내니까. 사실은 일이 힘들어서 처음엔 좀 쉬고 싶었어요. 공연이 주말이다 보니까. 근데 공연하고 나서는 나한테 이런 기회가 오면 앞으로는 무조건 감사히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도 되는 건데 저를 선택해 준 것 자체가 감사했습니다.

사회연대은행   두 분,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나시나요?

구현모   네. 원준이가 되게 어버버했던 모습이. (웃음)

정원준   하하. 형 말이 맞아요.

사회연대은행   원준 님은 대사님 처음 봤을 때 어떠셨어요?

정원준   누군지 몰랐죠. 저는 모든 봉사자들이 그냥 다 신기하고, 저랑 관련 없다고 선을 확실히 그었거든요. 직설적으로 표현할게요. 나랑 상관없는 사람. 예전엔 ‘사랑을 나눌게요, 내가 봉사할게요’ 하는 사람들이 다 싫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같이 자란 친구들도 그러니까. 지금도 제 친구들은 잘 안 믿어요. 어른들이 사랑을 나눠준다고 하면 가식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제 생각이 바뀌었어요.

사회연대은행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었나요?

정원준   사실, 보육원에서 도움의 손길을 준다고 하면서 본인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걸 많이 느꼈어요. 우리는 마치 이용당하는 느낌. 그런데 저 자신을 플랫하게 봤을 때, 가식도 100%가 아니고 진심도 100%가 아니잖아요. 저도 똑같은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한테 완벽한 잣대를 들이대는 게 맞나? 그럼 뭐가 중요한가 생각했을 때, 그 자리에 봉사하러 오는 그 자체가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간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생명이잖아요. 저는 시간이 사람의 수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간을 내서 오는 것 자체가 귀한 거라고 여기게 됐죠. 솔직히 현모 형을 깊이 다 알지는 못해요. 그런데 형이 시간을 내서 꾸준히 오고 아이들을 위해서 혼자 장비 세팅하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왜 저렇게까지 하나 생각했어요. 안 힘드시나. 형이 자녀도 있잖아요. 근데 이 시간을 쓰는 것 자체가 마음을 쓰는 거고 그 자체가 귀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걸 깨달은 게 1년이 채 안 됐어요.

사회연대은행   대사님, 지금 이 말을 들으니 어떠세요?

구현모   1년이나 돼서 다행이네요. 나는 계속 애쓰고 있었는데, 계속 그렇게 생각하면 속상하죠. (웃음)

정원준   저는 부정적인 게 많았어요. 정말로.

DSC07458 배경보정

그 순간이었기에 오래 남는 추억이 있어요

사회연대은행   보육원 나눔 활동을 계속 하는 원동력이 뭔가요?

구현모   제가 고생했던 게 제일 크고요. 그리고 아이를 낳으면서 더 마음을 쓰게 된 것 같아요. 사랑을 더 주지 못해서 아까운 게 부모 마음인데, 이 친구들은 받아야 될 사랑을 이 정도도 못 받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애들이 그냥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잠깐이라도. 우리도 그렇잖아요. 좋았던 추억은 생각만 해도 힘이 나잖아요. 제가 정기적으로 봉사 활동하는 단체는 매달 다른 보육원을 가요. 그날 가서 내일이 없는 것처럼 이 친구한테 완전히 집중하고, 그 시간이 나중에 이 친구들에게 삶의 원동력이 됐으면 좋겠고요.

사회연대은행   조금 짓궂은 질문일 수 있는데, 그렇게 한 번 왔다 가는 건 관계가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친구들한테 허탈함이나 실망감을 주는 것은 아닐까요?

정원준   그건 제가 얘기해도 될까요? 물론 관계가 계속 지속되면 좋죠. 근데 그게 순간이었기에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한 회사에서 봉사를 왔어요. 1대 1 결연을 맺어서 딱 그 당일만 인천 갯벌에 가서 놀았어요. 1대 1로 같이 씻고 갯벌에서 놀고 계속 붙어 다녔어요. 그게 인생에서 안 지워져요. 그때 봉사자가 제 볼을 만져주면서 “원준이 참 이쁘다” 이렇게 해준 게 잊혀지지 않아요. 순간뿐이니까 아쉽지 않겠냐 하셨는데, 그 순간의 사랑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아요. 어떤 회사 팀이랑 축구 같이 한 것도 절대 안 잊혀져요. 그것도 딱 1회였어요.

사회연대은행   대사님은 ‘위로의 싱어송라이터’라는 별칭으로 불리시잖아요. 어떤 계기로 붙여졌나요?

구현모   그 타이틀은 제가 호주에서 버스킹을 오래 하면서 붙은 거예요. 그때는 설 무대가 없으니까 노래는 너무 하고 싶고. 그래서 버스킹을 나갔는데 나가면 또 너무 재밌고, 매주 저를 보러 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니까 이제 음악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돈이나 열심히 벌자, 그러고 마지막으로 버스킹을 나간 날이었어요. 어떤 한국 여자분하고 외국 남자분이 지나가는데 그 여자분이 저를 너무 신기하게 쳐다보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한국 사람이 시드니 시티 한가운데에 버스킹 하는 케이스가 별로 없었어요. 제가 한국 분이냐고 물어보니 그렇대요. 그래서 한국 노래 하나 불러드리겠다고 하고, 2am의 ‘이 노래’를 불러드렸어요. ‘줄 수 있는 게 이 노래밖에 없다’ 이런 내용이었는데, 이 여자분이 갑자기 길에서 펑펑 우시는 거예요. 외국 남자는 한국어 가사를 모르니까 당황해서 너 욕했냐고 멱살 잡고. (웃음) 아니라고, 이런 노래라고 하면서 그분 사연을 듣게 됐어요. 이분도 저처럼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호주 와서, 외국 사람인 척하면서 독하게 살았던 거예요. 근데 우연히 길에서 만난 한국 남자가 불러준 노래 때문에 위로를 받은 거죠.

사회연대은행   ‘위로의 싱어송라이터’는 거기서부터 시작된 거군요.

구현모   누군가가 내 노래를 듣고 그렇게 펑펑 우는 걸 처음 봤는데,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어요. 내 노래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좀 더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그 이름이 좀 버겁다는 생각이 들어요. 위로를 하려면 그 사람 마음을 알아야 되잖아요. 그래서 계속 힘든 일이 생기거나, 실제로 너무 많은 일을 겪다 보니까.. 공감까지는 괜찮은데 위로는 너무 빡센 것 같고..

사회연대은행   그럼 어떻게 불리고 싶으세요?

구현모   딱히 생각은 안 나는데 “역시 구현모”라는 말. 남자들이란 인정의 동물이잖아요. (웃음) 따뜻한 이미지는 계속 유지하되, 좀 윤택했으면 좋겠어요. (웃음) 나도 없는데 나보다 더 없는 사람들을 향해 항상 달려갔던 삶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지만, 재정이 넉넉해서 더 많은 곳에 찾아가고 더 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원준 공연

그 시간은 나무의 나이테 같은 거예요

사회연대은행   오늘 원준 님이 혼자 공연 세팅하고 정리하는 모습을 보셨는데 어떤 마음이 드셨나요?

구현모   옛날 생각 진짜 많이 났어요. 저도 모든 것을 다 이고지고 다니면서 공연해왔어서.. 당시에는 나는 왜 이렇게 힘든 환경에서 음악을 해야 되나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지금의 나를 보면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 0부터 10까지 다 아는 뮤지션이 될 수 있었을까. 그건 누가 해줄 수 없는 거거든요. 그 시간은 마치 나무의 나이테 같은 거예요. 저는 원준이가 되게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원준이가 부러울 때도 있어요. 원준이는 한 걸음만 더 나아가서 용기를 내면, 도와줄 사람들이 주변에 정말 많거든요. 정말 좋은 분들이 이끌어주고 있어요. 지금은 자존심과 어렸을 때 겪었던 환경에서 오는 부정적인 인식이 남아있지만, ‘이런 형도 있구나, 이런 선배도 있구나’를 알아가고, 나에 대해서 말하는 게 자존심 상할 일이 아님을 알게 될 때, 원준이가 쌓아온 내공이 플러스 돼서 날개를 펼치지 않을까 싶어요.

정원준   맞아요. 아직 나를 완전히 오픈할 마음이 없어요. 근데 주변에서 비슷한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너를 깨고 나와야 된다. 그러면 정말 너를 도와줄 사람이 많다.’ 제가 바이올린을 못하진 않아요. 그렇다고 막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웃음). 주변에서는 네 이야기를 하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도와줄 거라고 얘기해요. 그런데 저는 아직 제 얘길 못 하겠어요.

사회연대은행   나를 불쌍하게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가요?

정원준   그냥 평범하고 싶을 때가 많아요. 나를 오픈하고 알리면 성향상 피곤하고 편하진 않아요. 이게 계속 부딪혀요. 이번 앨범 준비할 때도 제 힘으로 준비한 게 아니에요. 주변에서 끌어줬어요. 교수님들하고 회사 사장님이 1년 전부터 너의 인생을 음악으로 만들어 봐라 계속 권유하셨어요. 결국 1년 뒤에 하게 됐는데, 앨범준비 때 또 돕는 사람들이 붙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뮤직비디오 찍고 발매 기념 콘서트까지 하게 됐어요. 제 능력이 아닙니다.

구현모   원준아, 주변에서 해주는 대로 따라가. 그냥. 넌 최선을 다해 네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돼. 나는 그걸 찾고 있거든. 판을 깔아줄 사람.

정원준   이미 주변에 있는 것 같은데요.

구현모   아니야. 네가 한마디 하는 거랑 내가 한마디 하는 거랑 파워가 달라. 그게 네가 가진 이야기고. 아무튼 다른 사람이었으면 부러웠을 텐데, 너니까 좋다.

정원준   이 형은 진짜 다 겪은 사람 같아요. 진짜로.

DSC07265 노출보정

알을 깨고 나오다

사회연대은행   대사님도 원준 님 같은 시절이 있으셨을 텐데, 그 틀을 깨고 나온 계기가 있었을까요?

구현모   TV 오디션에 출연한 게 진짜 큰 도전이었어요. 그때까지도 저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부정적으로 봤거든요. 왜 음악이 평가받아야 돼? 그랬는데, 그것조차 객기였던 것 같아요. 여기서는 이렇게 대처해야 되고 저기서는 저렇게 해야 된다는 걸 배워가고 있는 중이고, 지금도 여전히 ‘음악이 왜 평가받아야 돼?’라는 생각은 있지만, 그럼에도 그 산을 넘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생긴다는 건 부정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사회연대은행   혼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구현모   맞아요.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는 게 결론인데, 그걸 하고 있을 땐 모르죠.

사회연대은행   앞으로 하고 싶은 음악은 어떤 음악인가요?

정원준   음원 작업 하면서 앞으로의 방향을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딱 하나 떠오르는 게 오디션밖에 없더라고요. 예술 지원 사업에 원서를 넣으면 광탈이에요. 제가 포트폴리오가 있는 것도 아니고 SNS도 없다 보니까, 제 연주를 들려주지도 못하고 그냥 탈락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는 교수님한테 상담을 했더니, 오디션을 보라고 하더라고요. 오디션은 오로지 실력으로만 뽑는다고.

사회연대은행   오디션에 도전할 생각이군요.

정원준   네. 기회를 기다리고 있어요. 현모 형도 오디션에 나갔잖아요. 어느 순간 만날지 모르지만 그때를 기다리면서 계속 실력을 쌓으려고요. 좋은 악기도 필요하니까 돈도 모으고 있고요. 이번에 사회연대은행 WE CARE_DREAM 마무리하고 목돈 받으면 악기 사는 데 보태려고 해요. 그리고 좀 더 대중적인 음악도 연주하고. 오늘 조용필 노래도 그래서 선곡했어요.

구현모   좀 더 대중적으로 가야 돼. 요즘도 들리는 옛날 노래를 해봐. 그걸 제일 잘하는 뮤지션이 아이유잖아. 리메이크를 진짜 잘하는데 거기서 힌트를 얻을 수 있어.

정원준   오늘 김범수 ‘끝사랑’도 처음으로 해봤거든요.

구현모   그 곡도 좋았어. 바이올린이라는 악기 자체가 클래시컬하잖아. 그렇기 때문에 클래식이 아닌 다른 장르를 연주하는 게 오히려 색다를 수 있어. 네가 가요만 주구장창 해도 악기가 가진 클래시컬함이 있으니까. 재즈부터 컨트리까지, 바이올린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할 줄 알아야 돼.

정원준   그럴까요?

구현모   그럼. 지금 네가 갈 길이 얼마나 무궁무진하니.

사회연대은행   대사님은 앞으로 어떤 행보를 그리고 있나요?

구현모   저는 곡을 많이 생산해 내는 게 목표예요. 지금 제일 못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2024년에 매달 음원을 냈던 적이 있어요. 그걸 묶어서 정규 앨범으로 냈는데 주변에서 진짜 미쳤다고 했었죠. 앞으로 더 그럴듯한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사회연대은행   마지막으로 오늘 이 자리가 두 분에게 어떻게 남을까요?

정원준   제가 연락도 안 하고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인데, 이상하게 올해 들어서 현모 형과 함께하는 일이 많고, 오늘도 얘기 나누며 현모 형과 가까워진 것 같아요. 그리고 확실히 느낀 건, 제가 저라는 사람의 껍질을 벗고 나와야겠다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얼마 전에 한 행사 관계자분이 원준 씨 착각하면 안 된다, 우리는 원준 씨의 배경 때문에 부른 게 아니라 원준 씨가 잘해서 불렀다. 여기는 우리가 세워주고 싶어도 못하면 못 세운다고요. 그러면서 자신감을 가지라고. 아까 현모 형이 제 연주가 별로였으면 안 불렀다고 한 게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구현모   내가 티를 안 내서 그렇지 음악에 있어서는 엄청 까탈스러워. (웃음) 저는 오늘 이야기 나누면서 사회연대은행과 그럴듯한 공연을 만들어서 자립준비청년들, 더 많은 친구들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고막 남친’의 컨셉으로 순도 높은 공연으로 자립준비청년들과 함께하는 자리가 만들어지길 기대합니다.

사회연대은행   그때 원준님도 함께 하면 좋겠네요.

정원준   저야 불러주시면 감사하죠.

구현모 정원준

정원준 님은 사회연대은행의 두나무 넥스트 잡 인턴십과 한화생명 WE CARE_DREAM 자산형성 지원사업에 참여했습니다. 구현모 나눔대사는 2023년부터 사회연대은행 나눔대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