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택의 한 골목에 자리한 작은 남성 전문 헤어숍. 통유리 너머로 햇살이 들어오고, 나무 프레임의 거울과 미용 의자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습니다. 이곳을 운영하는 청년 이상엽* 대표는 한 사람의 머리를 손질하는 데 넉넉히 한 시간을 배정합니다. 더 많은 고객을 빠르게 받기보다는, 자신도 고객도 만족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머리만 자르러 오는 곳보다는, 서로 안부도 묻고 함께 나이 들어가는 단골 가게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가 꿈꾸는 가게의 모습은 화려한 대형 미용실이 아닙니다. 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들러 이야기를 나누고, 한 번 방문한 고객이 다시 찾아오는 동네 터줏대감 같은 가게입니다.
10년의 현장 경험, 창업이라는 새로운 선택
상엽 님이 미용을 시작한 것은 20대 중반 무렵입니다. 처음에는 낮은 급여를 받으며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고, 이후 서울의 여러 미용실에서 약 10년간 기술과 고객 응대 방식을 익혔습니다.
오랜 기간 미용업에 종사했지만, 창업은 넘기 어려운 벽처럼 느껴진 것이 사실입니다. 1인 미용실을 운영하면 고생이 시작된다는 주변의 이야기와 불안정한 수입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고객을 만나고,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점점 커졌습니다.
서울에서 창업할 공간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높은 보증금과 임대료가 부담이었습니다. 여러 지역을 검토한 끝에 고향인 평택으로 돌아왔고, 사회연대은행의 ‘두나무 넥스트 잡 창업지원사업’을 알게 되면서 막연했던 계획을 구체적인 실행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지원받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어요. 그런데 준비하는 과정에서 계속 응원해주시고, 불안할 때마다 할 수 있다고 말씀해주셔서 큰 힘이 됐습니다.”
특히 무이자 자금 지원은 초기 창업비용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창업을 결심하고 실제로 움직일 수 있게 한 중요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작은 인사가 단골이 되는 가게
현재 매장이 위치한 곳은 대학가 원룸촌과 산업단지 출퇴근 동선이 만나는 지역입니다. 매장 위치는 처음부터 정해둔 곳은 아니었습니다. 사회연대은행의 창업 컨설팅을 통해 사업계획과 고객 수요를 점검하며 여러 후보지를 검토한 끝에 가게 장소를 선택했습니다. 오픈 이후 가게에는 인근 산업단지와 사업장에 근무하는 직장인 고객이 꾸준히 방문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미용실은 여러 곳 있었지만, 젊은 남성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상엽 님이 쌓아온 남성 헤어 분야의 경험과 지역의 수요가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습니다. 별도의 온라인 광고를 하지 않았음에도 고객의 소개와 주변 상인들의 입소문으로 매장이 알려졌고, 방문객과 매출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미용실이 동네 아지트가 되었음 하는 바램처럼, 매장 앞을 청소하는 환경미화원과의 인연도 평범한 아침 인사에서 시작됐습니다. 평소 매장 주변을 깨끗하게 관리해주는 환경미화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고, 이후 그는 매장을 찾아 머리를 자르면서 꾸준히 방문하는 단골이 됐습니다. 상엽님에게 고객은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고 비용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지역에서 마주치고 안부를 나누며 관계를 쌓아나가는 이웃입니다.
“30분 안에도 커트를 끝낼 수 있지만, 저도 만족하고 고객도 만족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한 분당 한 시간 정도를 잡고 있습니다.”
상엽 님은 샵을 운영함에 있어서 속도보다 완성도를, 매출만큼이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는 오며 가며 안부 인사를 나누고 반갑게 손님을 맞이하며 단골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창업 이후 생긴 가장 큰 변화, 다시 보이기 시작한 ‘희망’
창업 전에는 사람을 만나는 데 드는 작은 비용조차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습니다. 생활이 빠듯하다 보니 고마운 사람에게 식사 한 끼를 대접하는 일도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게를 운영하고 직접 소득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게 먼저 식사를 대접하고, 받은 도움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고 싶은 마음도 생겨났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지금 조금이라도 벌고 있으니 받았던 것을 다시 베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창업 전에는 계속 구상만 하면서 ‘이게 될까’ 싶었는데, 이제는 직접 부딪혀보니 계속하면 조금씩 나아질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가게를 연 것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였지만, 창업은 스스로의 생활을 다시 세우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회복하며, 앞으로의 삶을 그려볼 수 있는 전환을 마련해 준 것이기도 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부터 하나씩
창업 초기, 상엽 님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일부 인테리어를 직접 시공했습니다. 그런데 운영을 시작한 뒤에는 전기 배선과 조명, 커튼, 샴푸대와 세탁·건조 설비 등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개선 과제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밝기가 충분하지 않아 눈이 쉽게 피로해지고, 강한 햇빛 때문에 작업이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수건을 관리하기 위한 건조 설비도 필요하지만, 상엽님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갖추기보다 매장 운영 상황을 살펴가며 필요한 것부터 차근차근 바꿔나갈 계획입니다.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현장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상엽 님은 창업가로 한 발 한 발 성장 중에 있습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 성장하기
상엽 님의 다음 목표는 단순한 매출 확대가 아닙니다. 자신과 잘 맞는 동료를 만나 2~3명이 함께 운영하는 헤어 샵을 만드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아래에 두기보다 어깨를 나란히 겨루는 동료들과 함께, 서로 배우고 응원하며 가게를 키워가고 싶다는 바람입니다. 이후 매장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면 공간을 다시 정비하거나 2호점 개설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오래 일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돌보는 것도 중요함을 배웠습니다. 쉬지 않고 일하느라 체력이 떨어지고 서비스 유지가 버겁게 느껴진 경험을 한 이후, 정기적으로 운동하고 휴식을 확보하며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몸이 따라주는 한 미용은 계속하고 싶어요. 좋은 사람과 함께 이 공간을 꾸려가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상엽 님은 아직 자신의 이야기를 성공 사례라고 부르기에는 이르다며 손사레 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가게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면 자립준비청년으로서 이름과 얼굴을 당당히 밝히고, 자신처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돕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사회연대은행의 지원으로 시작된 로컬의 작은 헤어숍은 이제 지역 주민들의 일상과 연결되는 아지트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기술과 노력, 주변의 응원, 사회적 금융이 만나 만들어낸 변화입니다.
누군가에게 창업자금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머릿속에만 있던 계획을 현실로 옮기는 첫걸음이 됩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한 사람의 자립을 넘어 다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건넬 수 있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고 있습니다.
*인터뷰이 요청으로 이름은 가명 처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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