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온기금 관계금융

인사이트

[특집] 함께온기금이 묻는 것들 2편 – “당신에게 진짜 필요한 최소 금액은 얼마입니까?”

74시간의 통화에서 발견한 것

함께온기금 2편 메인 이미지

지난 1편에서 우리는 한 신청자의 신청서를 읽었습니다. 그러나 서류 안에 다 담기지 않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절박한 사연을 가진 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무엇이 한 사람의 자립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일까. 그 질문을 풀기 위해 우리는 통화 기록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함께온기금 개인 소액대출 신청자 163명을 대상으로 한, 유선 통화 559건, 약 74시간의 대화였습니다. 사회연대은행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공학부 연구팀과 함께 통화를 글로 옮기고, 그 안에 담긴 질문과 답변, 머뭇거림과 침묵의 패턴까지 세밀하게 살폈습니다.

1

74시간의 목소리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들었을까요.

절박함은 출발선이지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먼저 드러난 사실은 ‘절박함만으로는 누구에게 자립의 가능성이 있는지 가려낼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심사를 통과한 신청자와 그렇지 못한 신청자 모두, 대화 속에서 “잠을 잘 수가 없다”, “마지막 동아줄이다”와 같은 말을 거의 비슷한 빈도로 꺼냈습니다. 자녀 양육비, 감당하기 어려운 의료비, 갑작스러운 실직, 벼랑 끝의 주거 불안. 사연의 무게는 어디 하나 가벼운 곳이 없었습니다.

절박함은 문을 두드린 모두가 안고 온 공통의 출발선이었지, 앞으로 나아갈 힘을 가늠할 기준선이 되지 못했습니다.

심사통과자

그렇다면 절박함 너머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했을까요.

합격을 가른 결정적 차이 : ‘감정’을 ‘사실’로 묶어내는 능력

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은 명확했습니다. 합격을 결정짓는 것은 단일한 요소가 아니라, 신청자가 자신의 위기를 객관적으로 구조화하는 여러 시그널의 결합이었습니다.

우리는 대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5가지 핵심 시그널’을 추출했습니다.


1. 정확한 숫자를 말하는가 : “빚이 너무 많아요” 대신 구체적인 금액을 꺼내는가.
(합격자 평균 6.23회 vs 불합격자 4.22회)


2. 시간의 흐름을 정리하는가 : “작년부터”, “올해 안에” 처럼 자신의 상황을 시간 순서로 설명하는가.
(합격자 3.33회 vs 불합격자 2.12회)

3. 대출 전에 스스로 무언가를 해봤는가 : 절약이든, 자산 처분이든, 먼저 손을 써본 흔적이 있는가.
(합격자 2.26회 vs 불합격자 1.34회)

4. 돈이 쓰일 곳이 분명한가 : “생활비가 필요해요”가 아니라 어디에 얼마가 필요한지 말할 수 있는가.

5. 묻는 말에 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스스로 설명하려 하는가.

이 신호들이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단지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호가 네 가지 이상 겹치는 순간, 심사 통과 가능성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약 1.7배로 높아졌습니다.[1] 그리고 심사를 통과한 신청자의 절반은 첫 통화에서 이미 이 신호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신호 개수별 대출 심사 통과 비율
※ 이 비율은 자립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신호이지, 합격 기준이 아닙니다

‘막연한 500만 원’과 ‘절실한 100만 원’의 차이

가장 또렷한 차이는 돈의 쓰임새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말하는가 였습니다. 다음의 통화 예시가 이를 보여줍니다.

두 사람 모두 신청서에 ‘희망 대출금 500만 원’을 적어 냈습니다. 심사역이 묻습니다.

희망 대출금이 500만 원이신데, 지금 당장 꼭 필요한 최소 금액은 얼마인가요?”

민수 씨(가명)는 답합니다. 빚이 이자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사실 500만 원도 부족해요. 당장 생활비도 없어서 너무 막막합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지현 씨(가명)는 같은 질문에 다르게 답합니다. 우선 아파트 관리비 체납을 해결할 100만 원 정도가 가장 급합니다. 관리비가 3개월 이상 밀리면 관리사무소에서 퇴거 압박이 들어오거든요.”

민수 씨의 사연이 덜 절박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현 씨는 당장 막아야 할 위기를 명확한 숫자로 좁혀 말하고 있었습니다.

기존 고금리 대출을 갚기 위해 더 낮은 금리로 바꾸겠다는 ‘대환’. 이 단어는 심사를 통과한 신청자의 통화에서 그렇지 못한 신청자보다 약 4.7배 더 자주 등장했습니다.[2] 대환을 말한다는 것은 이미 자기 부채의 출구를 그리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통화에서 대환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비율 비교
▲ 통화에서 ‘대환’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비율

또한, 까다로운 질문 앞에서의 ‘머뭇거림’도 흥미로운 시그널이었습니다. 심사를 통과한 신청자의 통화에서는 한 번 말을 고르는 순간이 더 자주 나타났습니다.[3] 이는 회피가 아니라, 민감한 상황을 정확하게 말하려는 신중함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대화가 드러낸 것, 서류가 숨긴 것

이 신호들은 개인의 말하기 습관이 아니었습니다. 실제 재무 상태와 깊게 맞닿아 있었습니다.

서류상 월 소득 평균은 심사를 통과한 신청자(311만 원)와 미통과자(299만 원)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이들의 차이는 부채의 크기에 있었습니다.

심사 통과자들의 부채는 월 소득의 약 5~6개월 치 수준이었습니다. 미통과자들은 월 소득의 약 12개월 치, 즉 1년 치 소득을 고스란히 빚으로 안고 있었습니다.[4] 시중 금융권의 기준(DSR 40%)으로는 모두가 대출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심사를 통과한 신청자들은 그 안에서도 부채를 스스로 통제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통화 속 구체적인 언어는 그 통제력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채의 무게
▲ 부채 비율

첫 통화가 특히 중요했습니다. 심사를 통과한 신청자는 첫 통화에서부터 핵심 정보를 충분히 꺼냈고, 이후 통화는 보완 위주로 짧아졌습니다.[5] 그렇지 못한 신청자는 처음엔 방어적으로 답하다가 후속 통화가 되어서야 점점 사정을 풀어놓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누가 먼저 전화를 거는지도 의미 있는 신호였습니다. 불안감에 먼저 연락해온 신청자의 심사 통과율은, 기관에서 먼저 연락한 경우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했습니다.[6]

우리는 누구를, 어디로 연결할 것인가

이 데이터가 알려준 것은 신청자를 가르는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방향의 도움이 필요함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한쪽에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자기 부채를 통제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신속한 자금 연결이 필요합니다. 기존 신용평가가 과거 연체 이력만 보느라 놓쳐버린 사람들입니다.

다른 한쪽에는 아직 자신의 상황을 충분히 정리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대출금 이전에 상담과 코칭의 시간입니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는지, 무엇부터 손을 써볼 수 있는지를 같이 그려보는 과정이 먼저입니다.

6

자금으로 연결할 사람과 코칭으로 연결할 사람을 가려내고, 각자가 다시 버틸 수 있는 기반을 두텁게 만드는 것. 이것이 지난 22년간 사회연대은행이 해온 일, ‘관계 기반 금융’의 본질입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 모두의 이야기

74시간의 통화를 다 듣고 났을 때, 우리 마음에는 또 하나의 질문이 남았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사연은 모두 달랐습니다. 한부모 가장의 주거 불안, 가족의 생계를 떠안은 청년의 부채, 연체된 의료비까지.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사연은 그토록 다양한데, 사람들이 멈춰 서 있는 자리는 어쩐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이 문제를 한 사람의 불운으로 여길 수 있을까요? 그들을 같은 자리에 멈춰 서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3편에서 계속)

글: 김세권(미래사업부 부장)

📖 함께온기금 특별기획 정주행하기

👉 [특집] 함께온기금이 묻는 것들 1편 – “당신에게 왜 이 돈이 필요한가요?”


[1] 각 시그널을 1점으로 환산하여 5점 만점의 ‘구조화 점수’를 매겼을 때, 점수가 0~3점인 구간에서는 합격률이 기저율(19.1%) 부근에 머무름. 4점 이상을 획득하는 순간, 합격률은 33.3%로 기저율의 약 1.7배 상승함.

[2] 대환 언급 비율 : 심사통과자 중 8.5%, 미통과자 중에는1.8%가 ‘대환’을 언급함. 약4.7배의 격차를 보임.

[3] 머뭇거림 발생 비율: 심사 통과 신청자 10.3%, 미통과 신청자 5.5%.

[4] 부채 중간값 비교: 심사통과자는 월 소득의 5.6개월 치(연 소득 대비 0.46배), 미통과자는 월 소득의 12.0개월 치(연 소득 대비 1.00배). 통화 내용에서 신청자가 직접 언급한 부채 규모와 월 소득을 기준으로 산출.

[5] 1차 통화 답변 길이 비교: 심사통과자 평균 1,027자, 미통과자 평균 874자(약 17% 차이). 

[6] 통화 방향별 심사 통과율: 신청자가 먼저 연락해온 경우 5.8%, 기관에서 먼저 연락한 경우 23.7%(약 4배 차이). 불안감에 먼저 전화를 거는 행위 자체가 아직 상황 정리가 덜 된 상태임을 보여주는 지표일 수 있음. 사회연대은행은 신청자와 통화 이전에 온라인으로 사연 심사를 먼저 진행하고 있음. 기관에서 먼저 연락한 경우는 사연 심사를 통해 1차 선정 후 담당자가 연락한 것을 의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