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단층에 갇힌 사람들을 위한 대안, 사회연대은행 특별기획 [함께온기금이 묻는 것들 3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특집] 함께온기금이 묻는 것들 3편 – “우리가 당신을 '대상자'가 아닌 '인격'으로 마주한다면?” 1 함께온기금 3편](https://www.bss.or.kr/wp-content/uploads/2026/05/함께온기금-3편.png)
최근 금융권의 화두는 ‘잔인한 금융’입니다. “금융이 너무 잔인하다”는 정부의 비판은 현행 금융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습니다.
“왜 여유 있는 사람일수록 낮은 금리를 누리고, 절박한 사람일수록 높은 금리를 감당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사회연대은행이 지난 23년간 현장에서 마주해 온 물음이기도 합니다.
효율성이 만든 거대한 공백, ‘도넛 시장’
현재의 금융 시장은 마치 ‘가운데가 휑하게 뚫린 커다란 도넛’과 같습니다.
5대 시중은행 신규 대출의 약 74%가 신용점수 900점 이상 차주에게 집중되는 반면, 800점 이하 차주 비중은 4년 만에 9%에서 5%로 줄었습니다. 1금융권에서 밀려난 이들이 마주하는 것은 저축은행 진입 단계에서의 10%p 이상 금리 절벽입니다.[1] CSS가 과거의 이력만을 기준으로 삼는 한, 금융 이력이 단절된 이들의 현재 상환 가능성은 평가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리스크를 개별 검증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외면한 금융권의 회피가, 중간 지대를 통째로 비워버린 것입니다.
![[특집] 함께온기금이 묻는 것들 3편 – “우리가 당신을 '대상자'가 아닌 '인격'으로 마주한다면?” 2 금리 단층](https://www.bss.or.kr/wp-content/uploads/2026/05/image.png)
2000년대 초반, 금융기관 간 신용정보를 일정한 규격으로 공유하는 ‘K-포맷(K-Format)’이 도입되고 정착하면서 금융 시장은 큰 변화를 맞았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한 신용평가 시스템(CSS)은 수백만 명의 대출 적격 여부를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효율화’는 구조적 배제라는 부작용을 동반했습니다. 시스템이 정교해질수록, 데이터로 상환 능력을 증명하지 못하는 이들을 향한 금융 배제 또한 정교해졌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상환 능력은 있지만 CSS가 측정하지 못하는 이들이 머물 중간 지대는 통째로 비어버렸습니다. 이른바 ‘도넛 시장’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정부도 햇살론 같은 정책 서민금융으로 이 공백을 메우려 했습니다. 하지만 과거 신용 이력 중심의 획일적 평가라는 틀은 시장 금융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상환 가능성을 제대로 식별하지 못한 채 위험 비용을 금리(15.9%)로 일괄 전가하는 방식은, 오히려 차주의 실질적인 상환 역량을 갉아먹는 구조입니다. 햇살론15의 대위변제율이 25.8%(2025년 8월 기준)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것은 그 결과입니다.
시장 금융은 효율을 이유로, 정책 금융은 획일적 기준으로 – 방식은 달랐지만 상환 능력은 있으나 CSS가 측정하지 못하는 이들을 걸러내지 못했다는 결론은 같습니다. 함께온기금이 서 있는 자리, ‘중간지대(Gray Zone)’는 바로 그 공백입니다.
288만 가구, 데이터로 본 중간지대
그렇다면 이 공백은 실제로 얼마나 크고, 그 안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요.
중간지대를 제대로 보려면, 이 사람이 얼마나 무거운 빚을 지고 있는지, 그리고 가진 자산으로 그 빚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소득이 낮다고 곧 위험군이 아니고, 신용점수가 낮다고 상환 역량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행의 가계부실위험지수(HDRI)는 바로 이 두 축을 하나의 지수로 결합합니다.
-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연간 소득 대비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얼마나 무거운가?
- DTA(총자산대비총부채비율): 가진 자산으로 현재의 부채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가?
단순한 ‘부채의 규모’가 아니라 ‘부채를 감당할 실질적 역량’을 따져본 것입니다. 이 기준을 적용한 결과, 실질 부채 부담이 임계점에 달한 가구는 전체의 12.5%인 약 288만 가구로 추산됩니다. (사회연대은행 자체 분석,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원자료 기준)[2]
86만 가구, 함께온기금의 핵심 대상
288만 가구가 이 공백의 전체 규모라면, 그 안에서 관계 기반 금융이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집단은 누구일까요.
두 단계의 소거를 거쳤습니다. 먼저 자력 회복이 가능한 고소득·고자산 집단을 제외했습니다. 다음으로 복지 급여가 우선인 최하위 취약계층을 제외했습니다. 양쪽에서 걷어내고 남은 집단이 86만 가구입니다.[3]
![[특집] 함께온기금이 묻는 것들 3편 – “우리가 당신을 '대상자'가 아닌 '인격'으로 마주한다면?” 3 함께온기금 대상자 정밀화 과정](https://www.bss.or.kr/wp-content/uploads/2026/05/1차-소거.png)
이 86만 가구는 개입의 시급성에 따라 두 집단으로 나뉩니다.
첫째, 소득 기반은 있으나 저신용·다중채무로 제도권에서 점차 밀려나고 있는 ‘위험군(Gray Zone 1, 약 76.7만 가구)’입니다. 이들에겐 당장 쓸 수 있는 적절한 자금과 금융 코칭을 통한 삶의 지지 기반 구축이 필요합니다.
둘째, 이미 고금리 다중채무로 연체가 시작되어 방치할 경우 즉시 상환 불능으로 빠질 위기에 처한 ‘고위험군(Gray Zone 2, 약 9.3만 가구)’입니다. 이들에겐 복지 구간으로의 추락을 막는 예방적 개입이 시급합니다.
![[특집] 함께온기금이 묻는 것들 3편 – “우리가 당신을 '대상자'가 아닌 '인격'으로 마주한다면?” 4 함께온기금 핵심 대상 구분도](https://www.bss.or.kr/wp-content/uploads/2026/05/함께온기금-핵심-대상_re.jpg)
데이터가 그려낸 얼굴
이 86만 가구는 일정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연 3,000만 원(월 250만 원) 남짓을 버는 18~50세 경제활동 핵심층으로, 교육비와 주거비 등 고정 지출이 정점에 달하는 ‘허리 세대’입니다. 저숙련 서비스직이나 노무직에 주로 종사해 소득은 불안정하고, 금융 이력을 쌓기도 어려운 자리에 있습니다. 약 70%가 1~2인 소규모 가구입니다. 일은 하지만 자산이 없는 ‘워킹 푸어’인 데다, 삶의 위기가 왔을 때 자신을 지탱해 줄 가족이라는 완충재마저 부족한 사람들입니다.(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2024년 마이크로데이터(국가통계포털 MDIS 제공) 기반 자체 정리)
![[특집] 함께온기금이 묻는 것들 3편 – “우리가 당신을 '대상자'가 아닌 '인격'으로 마주한다면?” 5 함께온기금 핵심 대상 프로파일](https://www.bss.or.kr/wp-content/uploads/2026/05/핵심대상-프로파일_re.jpg)
‘대상자’가 아닌 ‘인격’으로 마주할 때
288만, 86만. 수치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숫자로 다가옵니다. 얼마의 재원이 필요한지, 어떤 프로그램을 설계해야 하는지, 고민이 이어지는 동안 이들은 계속 숫자로 머뭅니다.
함께온기금을 운영하며 우리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사연신청서를 통해 한 사람의 맥락과 의지를 받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경위로 빚을 지게 됐는지, 지금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 직시하고 있는지, 대출 이후 어떻게 갚아나갈 것인지. 숫자가 묻지 않는 것들을 물었습니다. 그렇게 수치 뒤의 사람이 인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인격으로 대할 때 거기서 관계가 시작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지난 시간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관계형 금융이 작동한다는 믿음,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우리는 이미 보냈습니다.
22년, 7,286건, 평균 상환율 83.2% [4]
관계형 금융 시스템을 짓는 빌더(Builder)로
한 사람의 사연을 듣고, 함께 계획을 세우고, 관계를 맺는 방식. 관계 기반 금융은 본질적으로 깊지만 느립니다. 그 접점에서 오간 대화는 많지만 구조화되지 않은 채 사라집니다. 담당자가 바뀌면 연결이 끊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난 2편에서도 다루었듯, 상담 기록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것이 보입니다. 처음엔 각기 다른 사연처럼 보이던 것들이, 쌓일수록 패턴이 드러납니다. 빚을 지게 된 경위, 위기를 직시하는 방식, 자구책을 세우는 태도.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 안에 반복되는 결이 있었습니다. 관계의 언어에는 구조가 있었습니다.
바로 지금, 그 구조를 시스템으로 옮길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포용 금융을 화두로 올리면서 이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커지고 있고, AI가 새로운 가능성을 열면서 그 구조를 시스템의 언어로 옮길 수 있는 기술적 토대가 마련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짓고 있는 관계형 금융 시스템은, 한 사람의 첫 상담부터 상환 이후까지, 그 여정에서 오간 맥락과 판단을 끊기지 않게 기록하고 이어주는 시스템입니다. 현장에서 사라지던 대화가 구조화된 데이터로 남고, AI가 그 패턴을 읽어 심사를 보조하며, 상환 이후에도 관계가 끊기지 않는 구조입니다.
22년 간 심사역의 머릿속에만 있던 것을 데이터로 꺼낼 수 있다면, 관계형 금융은 처음으로 한 사람이 아닌 수십 만 명에게 닿을 수 있게 됩니다.
그 가능성을 찾아가는 여정, 4편에서 이어집니다.
글: 김세권(미래사업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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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 “당신에게 진짜 필요한 최소 금액은 얼마입니까?”
[1] 금리 단층(절벽) 현상: 1금융권 대출이 거절되는 순간, 다음 단계인 저축은행으로 내려가면 같은 신용구간이라도 금리가 10%p 이상 뜁니다. 상호금융·보험·캐피탈 등 중간 단계가 존재하지만, 저신용 차주에게 실질적으로 열려 있는 창구는 제한적입니다. 신용점수의 차이가 감당해야 할 이자 부담을 갑자기 키우는 구조, 이것이 ‘금리 단층’입니다.
[2] 소거 기준은 HDRI 조건과 별도로 적용한 소득·자산 분위 기준입니다. 자력 회복이 가능한 집단(소득 상위 30% 초과 또는 순자산 상위 50% 초과)과 복지 급여가 우선인 집단(소득 하위 20% 이하)을 제외한 것은, 관계 기반 금융 개입의 효과성이 가장 높은 구간을 특정하기 위한 판단입니다.
[3] 방법론 설계는 빈곤·소득보장 정책 연구 분야 전문가의 자문을 거쳤습니다. 한국은행 HDRI의 DTA 산식은 원래 내부 자산평가액을 기준으로 하나, 해당 자료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아 이 분석에서는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총자산 항목을 대신 활용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은행 공식 수치와의 직접 비교는 어렵습니다. DSR 임계값은 40%와 60% 두 기준을 모두 검토했으며, 국내외 연구에서 통상적으로 DSR 40% 이상을 부채 부담이 높은 상태로 간주한다는 점을 근거로 40%를 적용했습니다.
[4] 2025년 말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