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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연대금융 기획 ①]사회연대경제 기본법 시대, 사회연대금융이 답해야 할 것들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 ‘사회연대경제 기본법’ 시대, 사회연대금융이 나아갈 길을 모색합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전환점

우리 사회는 인구 절벽으로 인한 지방 소멸, 경제적 양극화, 그리고 기후 위기 등 전례 없는 복합적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 속에서 과거의 시혜적 복지나 단순 보조금 중심의 정책은 재정적 지속 가능성과 문제 해결의 효율성 측면에서 명백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이 제정되면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새로운 경제 모델의 법적 기반이 처음 만들어졌고,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으로 민주적 경제 주체가 확산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연대경제 전체를 아우르는 상위법은 오랫동안 제정되지 못했습니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정의의 모호성, 이념적 논쟁, 부처 간 칸막이, 형평성 문제 등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2026년, 행정안전부가 사회연대경제의 주무부처가 되고 전담 조직이 신설되면서 ‘사회연대경제 기본법’의 연내 제정이 공식화되었습니다. 오랜 논의가 현실이 되는 전환점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20260108 사회연대경제기본법 제정 요구 출처 라이프인 정화령 기사
▲ 사회연대경제기본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관계자들 (출처 – 라이프인 정화령 기사)

금융 사각지대 – 시장이 외면한 자리

사회연대경제 기본법 논의에서 빠지기 쉬운 질문이 있습니다. 금융은 지금 누구에게 닿고 있는가, 그리고 누구에게 닿지 않고 있는가.

시장 금융은 본질적으로 수익성과 안전성을 기준으로 자금을 배분합니다. 담보가 없거나 신용 이력이 부족한 사람, 수익성은 낮지만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조직은 그 기준 바깥에 놓입니다. 이것이 금융 사각지대입니다. 제도권 금융이 구조적으로 외면할 수밖에 없는 자리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금융 이력이 부족한 씬파일러(Thin-Filer)는 약 1,239만 명으로 국민 4명 중 1명에 달합니다. 39세 이하 청년 다중채무자는 136만 명이 넘습니다. 지역에서 사회문제를 풀어가는 소규모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아이디어와 의지는 있지만 담보가 없어 자금 조달 단계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연대금융은 바로 이 사각지대를 향합니다. 수익이 아닌 사람을 기준으로, 담보가 아닌 가능성을 보고 자금을 공급합니다. 이것이 사회연대금융의 출발점이자, 다른 어떤 금융과도 구별되는 존재 이유입니다. 사회연대경제 기본법이 진정한 ‘연대’의 이름을 달고자 한다면, 이 사각지대에 대한 응답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성장했지만 아직 부족한 것들 – 사회연대금융의 현주소

사회연대금융은 2008년 사회적기업 시설 대부사업이 민간에 위탁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서민금융진흥원 중심의 정책 금융이 확대되고, 문재인 정부에서 사회적금융 활성화가 국정과제로 포함되면서 양적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사회적기업들의 공제사업과 자조기금, 임팩트 투자 영역도 함께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기본법의 부재는 정책의 지속성을 약화시켰습니다. 정치적 흐름에 따라 지원이 확대되었다가 축소되는 일이 반복되었고, 지난 정부에서는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되고 지원 사업이 종료되는 등 심각한 퇴행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현장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사회적경제 조직의 성장 단계와 필요에 맞춰 무상 지원, 대출, 투자를 유연하게 연결해줄 수 있는 전문 중개기관입니다. 지금 그런 기관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사회주택 같은 핵심 분야는 여전히 제도권 금융의 문턱이 높고, 맞춤형 금융 공급은 여전히 미흡합니다.

기본법 이후, 사회연대금융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기본법이 제정된다면 사회연대금융은 단순한 자금 공급 창구를 넘어 사회적경제 조직의 자립과 지역 생태계 구축을 지원하는 전략적 파트너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민관 협력의 도매기금 조성입니다. 도매기금이란 정부나 공공기관이 큰 규모의 자금을 먼저 조성하고, 이를 현장의 중개기관을 통해 수요자에게 전달하는 구조입니다. 지방소멸대응기금, 휴면예금, 기후대응기금 등 산재한 공공 성격의 자금을 사회투자 도매기금으로 결합하면, 민간 자본이 안심하고 유입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집니다. 적은 공공 재원으로 더 큰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레버리지 효과가 가능해집니다.

둘째, 지역 기반 소매 중개기관 육성입니다. 도매기금이 아무리 잘 조성되어도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는 밀착형 중개기관이 없으면 돈은 흐르지 않습니다. 지자체가 사회연대경제 활성화 기금을 설치하고 지역 내 중개기관이 운영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역 자금이 지역 안에서 선순환되고, 청년·주거·에너지·지역 자산화 같은 테마형 기금도 가능해집니다.

셋째, 공제사업의 법적·금융적 토대 마련입니다.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서로 연대하며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는 상호부조의 구조, 즉 공제사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기본법이 그 토대를 마련해야 합니다.

사회연대은행이 걸어온 길, 그리고 나아갈 방향

사회연대은행은 지난 23년간 한국에서 마이크로크레딧의 가능성을 현장에서 증명해왔습니다. 금융소외계층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사회적경제 기업을 지원하는 최초의 사회연대금융을 시도했으며, 사회투자기금 조성, 휴면예금의 공공재원화, 사회적은행 설립 연구 등 이 사회에 새로운 담론을 제시해 왔습니다.

자본의 논리가 아닌 사람과 지역 공동체의 필요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사회연대금융 – 그것이 시대적 요구에 맞게 성장할 수 있도록 사회연대은행이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가 사회연대금융의 다음 단계를 여는 토대가 되어야 합니다.

기본법 제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그 시작이 의미 있으려면 법의 언어가 현장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연대가 선언에 머물지 않으려면, 사각지대를 향하는 금융이 그 생태계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사회연대금융의 지평을 넓히는 논의가 지금 이 시점에 필요합니다.

글: 안준상 사회연대은행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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